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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지? 지윤 과대광고 싼거 사도 될까? 벌개미취 알아가자!~ 논란?

by 1wupwlndbd97 2020.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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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남의 산이나 들에 자라는 다년생 초본입니다.
생육환경은 햇볕이 잘 들고, 물기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키는 50~60cm이고, 잎은 앞으로 길게 뻗어 나며 끝이 뾰족합니다.
잎은 길이 12~19cm, 폭 1.
5~3cm가량이며 잎 가장자리에 작은 톱니가 있고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잎이 작아진다.
상층부의 꽃은 연한 자주색과 연한 보라색이며 줄기나 가지의 끝에 한 개씩 달린다.
열매는 11월에 시든 꽃잎을 붙인 채 결실하며 길이는 4mm, 너비가 1.
3mm 정도로 타원형이고 털이 없습니다.

이 포스팅은 벌개미취 을 조사하여 알아보았는데요.벌개미취꽃도움이 좀 되셨나요?그럼 오늘도 유익한 하루 되시길 바래요.여기까지 쑥부쟁이 벌개미취 먀리뀨 였습니다.우리 또봐요!오늘도 여기까지

하이요!!마리큐 이지요.오늘도 이렇게 저희 블로그를 놀러와주셔서 고마워요.:ㅁ날이 클린한게 매우 기분좋아요.형동생들은 오늘은 무얼 하며 보내시나요? ^^이제 이야기할 주제는이지요~마음의 준비 되었으면 지금이순간 시작하쥬. 고고씽 :ㅇ

e="text-align: center;"> 아하!! 근데 사실저두 #지윤 #sk 지윤 #지윤 가 자주 궁금했었는데요구독자분들 검색에 저도 한번더 검색중이랍니다.자이제 진짜 고고씽해볼까요?여러분들의 응원에 보답하는의미로자, 지윤호 시작합니다.

yle="text-align: center;"> 많은 이웃님들이 문의하시는게 바로바로바로 지윤이에요.이 포스팅이 인생이 불안한 누군가에게, 그리고 무엇보다 삶을 포기하려고 고심하는 누군가에게 살아야 할 클리어한 관념을 드릴 수 있길 확고히 바라겠습니다.혹시 다음과같은 상상이 난 적 있나요?나는 지금 무엇을 위하며 살아가지?현재, 이슈가 엄청 많은 관심사 중에서많은 이웃님들이 검색하시는게 바로바로 지윤입니당.이게뭐지? 느끼실 수있겠지만 통계적으로 많이들 검색하시는 쾌적한 햇살을 맞으면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감사한시간 잇님들의 불편함이 없앨수있도록 열심히할게요.매번이지 생각하는거지만 맛있는 음식을 적당히 받아들이고 적당한 온도에서 웹서핑 하는것이야말로 진짜로 행복이랑께요저희 마리큐 블로그에서 하이 퀄리티의 포스트 공부하고가세요

center;"> 지윤1)은 충주 사람으로 그 모친은 무녀였다.
지윤은 군졸에서 시작해 여러 차례의 종군을 통해 전공을 세웠다.
공민왕대에 거듭 승진하여 판숭경부사(判崇敬府事)가 되었는데 신돈이 처형당하자 지윤이 그의 옷가지와 패물을 모조리 차지해버렸다.
우왕 때에 문하찬성사·판판도사사(判版圖司事)로 재임할 당시 강을성(姜乙成)이란 자가 금을 판도사(版圖司)2)에 납품하고 아직 값을 받기 전에 죄를 짓고 처형당했습니다.
지윤이 그 처를 자기 첩으로 삼고 금값으로 포 1,500필을 받았습니다.
또 재상 신순(辛順)이 처형되자 지윤이 아들 지익겸(池益謙)을 신순의 딸에게 장가들여 몰수된 신순의 집과 재산을 찾아내어 아들에게 주었다.
지윤이 이인임·임견미와 함께 권력을 잡고 탐학한 짓을 저지르면서 김속명(金續命)의 청렴 정직함을 꺼려해 서로 알력을 빚었다.
지윤이 우왕의 유모인 장씨(張氏)3)와 간통했고 그 처 역시 장씨와 친한 사이여서 궁중에 마음대로 드나드니 김속명이, “재상의 처가 까닭 없이 궁중을 출입해도 되는가?” 하고 비난했습니다.
지윤이 그 말을 듣고 깊이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가, 반야(般若) 사건4)이 터지자 간관을 사주하여 김속명을 탄핵해 유배보내게 했습니다.
그 전말은 김속명의 전기에 실려 있습니다.
지평 송제대(宋齊岱)가 지윤이 유모 장씨와 관계를 맺은 것을 탄핵하려 하자, 지윤의 문객인 집의 김승득(金承得)의 밀고로 그 기미를 알아차린 지윤은 송제대를 지태안군사(知泰安郡事)로 폄출시켰다.
이후 지윤은 조정에서 권력을 휘두르면서 김승득과 지신사 김윤승(金允升)을 심복으로 삼았습니다.
지윤이 임박(林樸)을 죽일 때5) 이인임 및 경복흥과 상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지윤을 못마땅해 했습니다.
이에 앞서 왜적이 전주(全州)에 침입하자 도당(都堂)에서 원수의 선발을 의논하였으나 적당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 지익겸을 물망에 올렸는데 지윤이 내심 불만을 품었다.
이인임·지윤·최영 등이 경복흥의 집에 모여 오랫동안 의논하였으나 결정이 나지 않았습니다.
지윤이 성난 목소리로, “판삼사 공이 가는 것이 좋겠소.
”라 말하자 최영이, “나는 이미 양광도를 분담하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데로 갈 수 있겠소?” 하며 화를 내었다.
지윤은 앞서 이인임에게, “시중이 이 일을 계획해놓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니 시중이 가는 것이 좋겠소.
”라고 말했습니다.
지윤은 또 요동을 공략할 일을 내세워 그 논의 자체를 거부하면서,“왜적은 다만 변방을 소란케 할 따름이니 그다지 우려할 일은 아니오.
만약 명나라의 대군이 정료위(定遼衛)6)에 주둔해버리면 공격이 어려워질 것이니 병력을 돌려 정료위를 공격하는 것이 상책이오.
시중의 전략이 그럴듯하지만 현재로서는 국가를 위한 최선의 방책은 아니오.
”라고 말했습니다.
이인임이 발끈해,“삼재(三宰)7) 지위에 있는 사람이 어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요? 당신이 나라의 대계를 잘 세웠으니 내가 마땅히 물러나주리다.
전주는 우리나라의 목줄 같은 곳인데 지금 적들이 난입해 온 들판에 백골이 뒹굴고 있으니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린 것’을 생각해 이를 구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고 판단한 거요.
이를 위해 골몰하고 있는 판에 삼재가 이 결정을 반대하니 내가 일을 할 수 있겠나?”하고 횅하니 나가버렸다.
경복흥이 뒤쫓아가서 소매를 잡고 울면서 만류하자 지윤도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하였습니다.
그 뒤 이인임이 병을 핑계대고 집에 있을 때 지윤이 그 집 앞을 지나면서도 찾아보지 않자 사람들이 비로소 두 사람에게 틈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이 이인임의 집 대문에,“지윤의 문객 김윤승(金允升) 등 7, 8명이 문하사인(門下舍人) 정목(鄭穆)을 사주해 이인임을 탄핵해서 내쫓고 지윤을 시중으로 삼고자 합니다.
사태가 긴박하니 급히 대처하라.
”는 익명의 글을 붙였는데 말미에 “나의 직위은 판사이며 성은 이(李)가로 이름은 11획입니다.
”라고 밝혔다.
이인임이 그것을 비밀에 부치고 발설하지 않았는데 대호군 구성로(具成老)가 또 그 글을 얻어 이인임에게 보여주었다.
이인임이 비밀리에 그 글을 지윤에게 보이면서, “공과 나는 교분이 매우 돈독하니 이 따위 글이 우리 두 사람을 이간할 수 있겠는가?” 하니 지윤이 보고는 내부령 김상(金賞)이 쓴 것이라고 일러주었는데 김상은 이인임의 집안 조카였다.
당시 김승득(金承得)·김윤승(金允升) 및 판전교시사 이열(李悅)과 좌상시 화지원(華之元)이 지윤 편에 붙어 승진 발탁되기를 희망하면서 자칭 지문(池門) 4걸이라 했습니다.
이인임이 지윤 일당을 축출하려 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가, 마침 화지원과 김승득이 이열의 집에 모여,“원나라 사신을 후대하며 홍무(洪武) 연호를 쓰지 않고 원나라의 선광(宣光) 7년으로 시행하는 것은 졸속한 일이 아닌가?”하고 비판했습니다는 말을 염탐해 듣고는 이열·화지원·김승득을 순위부(巡衛府)에 하옥시켰다.
당시 지윤은 순군(巡軍) 부만호로 있었기 때문에 이인임은 그들이 조정을 비방했습니다고 트집을 잡으며 혹독하게 국문하면서,“근자에 너희들이 이열의 집에 모였다고 하던데, 어떤 문서를 만들어 임금에 대한 모략을 꾸몄느냐?”고 물었다.
이에 그들은,“천하가 한창 어지러워 명나라와 원나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터에, 선왕께서 명나라를 섬기기로 국책을 정했는데 이제 선왕의 뜻을 따르지 않고 갑자기 원나라의 선광을 연호로 쓰는 것은 너무 졸속한 일이 아닌가하고 이야기 나누었을 뿐이지 문서를 통해 공표한 것은 아닙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한략(韓略)도 지윤의 일당으로 지목해 옥에 수감했으며 김상(金賞)도 국문했습니다.
“네가 과거 장령으로 있을 때 정목(鄭穆)의 임명장에 서명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기생으로 인한 불화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 집안에 문제가 있기 때문인가?”하고 김상에게 물었는데, 이는 두 사람이 이전에 한 기생을 서로 간음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김상이, 정목 자신에게 과실이 있어서 그랬다고 대답하자, “그러면 누가 먼저 그런 주장을 꺼냈는가?” 하고 물으니 김상은 “차라리 내가 죄를 받더라도 대관(臺官)들의 의논을 누설할 수는 없소.
”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이열·화지원·한략은 곤장쳐서 유배보내고, 김승득은 과거 순정왕후(順靜王后)8)의 무덤을 봉한 관리라 하여 장형은 면제하고 유배보냈으며 또 김상도 유배보냈습니다.
김윤승은 형벌을 받지 않았는데, 이는 이인임이 지윤의 의구심을 다독거리면서 일이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심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지윤이 크게 두려워하며 이인임더러, “내가 만약 공을 음해했습니다면 반드시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라고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지익겸을 시켜 최영에게 구원을 요청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최공도 이인임과 한 통속이구나.
” 하며 신변을 엄중히 경비하게 했습니다.
장령 강은(姜隱)은 지윤의 권세가 점점 약해지는 것을 보고는 이인임편에 붙어, 김윤승 등이 붕당을 맺고 주색에 빠져 있습니다고 탄핵했습니다.
그날 밤에 김윤승이 지윤을 찾아가,“화지원·김승득·이열이 모두 유배당해 공의 심복이 다 제거되었는데, 이제 저까지 탄핵하니 화가 장차 공에게 미칠 것입니다.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하고 건의하니 지윤이 드디어 김윤승과 계략을 짰다.
“내일 내가 임금에게 청하여 자네를 불러 업무를 보게 한 다음, 경복흥과 이인임을 정방으로 불러들이겠네.
자네가 그때 왕께, 이것은 인사이동에 관한 일인데 시중이 들어오려 하지 않으니 주상께서 친히 비목(批目)9)을 내리시라고 말하게.
그리고 왕명을 사칭해 나를 부르면 내가 들어가 경복흥과 이인임을 파직시키겠네.
그러면 저들은 필시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갈 것이고 나는 다시 임금에게 ‘경복흥과 이인임은 역적 홍륜(洪倫)의 친척으로 주상께서 그 일족을 처단한 것을 보고는 대사를 도모하고 있으니 속히 군사를 동원하여 체포하십시오.
’라고 건의하겠네.
”약속이 정해지자 지익겸을 시켜 족당 목인길(睦仁吉)에게,“이인임이 우리 부친을 모해하니 부친이 돌아가시면 그 화가 나에게 미칠 것이요 죽을 것이요, 내가 죽으면 그 다음은 족부(族父) 차례가 될 겁니다.
은밀하게 목충파(睦忠波)·목충연(睦忠演) 등의 용사들을 내일 아침에 궁문으로 모이도록 해주십시오.
”라고 알리게 했습니다.
목인길은 거짓으로 응락한 후, 이인임만 처단하는 것이냐고 묻자 지익겸이 경복흥·최영·이희필(李希泌)·이림(李琳)·도길부(都吉敷) 등을 차례로 꼽았습니다.
목인길이 즉시 이인임 등에게 달려가 알린 후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 사태를 살피도록 했습니다.
한편 지익겸은 교주도의 군사 20여 명을 몰래 데려다가 이인임의 동정을 살폈다.
다음날 지윤이 도당(都堂)에 들러 경복흥과 이인임에게,“김윤승이 지금 동지공거로 있으면서 대간의 탄핵을 받고 있는데 만약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면 관리의 선발이 지연되고 농번기로 접어들게 되니 그냥 일을 보게 하는 것이 좋겠소.
”라 말했습니다.
경복흥은 지윤이 없는 틈을 타서 최영과 함께 그를 제거할 계획을 꾸미려고 짐짓, “공이 직접 대궐에 들어가 주상께 아뢰는 것이 좋겠소.
”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지윤이 대궐에 들어가 왕명을 사칭해 대간을 불러 급히 김윤승에게 일을 보라고 전달하게 했습니다.
마침 그 때 지평 이길조(李吉祚) 등이,“지윤이 널리 당파를 심어놓고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총재(冢宰)를 살해하고자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김윤승은 지윤의 심복으로 필시 그 음모를 알고 있을 것이니 그를 하옥시켜 국문하소서.
”라고 상소했습니다.
이 상소문이 왕에게 막 올라오는 판에, 지윤이 김윤승과 약속한대로 우왕에게 청을 올렸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자 지윤은 낯빛이 변하면서 사람을 보내 이인임을 정방으로 오라고 청하였습니다.
이인임·경복흥·최영 등이 그 음모를 간파하고 이희필·변안열·도길부·박임종(朴林宗)·조민수(曹敏修)·양백연·임견미·목인길 등과 함께 곧장 우왕에게로 가니, 왕은 지윤을 불러들이라고 분부했습니다.
지윤은 일당인 빈천익(賓天翊) 등 20여 명으로 하여금 무장하고 대궐 밖에 모이게 한 후 이인임 등이 나오는 것을 기다려 격살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경복흥과 이인임 등이 목인길을 시켜 우왕에게,“늙은 저희들이 갑작스런 변란을 듣고도 보고하지 않았으니 저희들 역시 죄가 있습니다.
전번 지윤이 지익겸을 시켜 저에게 갑사(甲士)10)를 달라고 요청한 바, 그 속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고 말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지윤이 성난 목소리로,“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경복흥·이인임·이림은 홍륜의 처족이며 이희필은 홍륜의 장인으로, 제가 역당놈들을 처치하려는 것을 꺼려 저를 살해하려고 하기에 갑사(甲士)를 데려다 방비했을 뿐입니다.
”라고 외쳤다.
최영이 칼을 차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을 본 지윤이 무릎걸음으로 그 앞에 다가가 칼을 빼앗으려 하였습니다.
최영이 칼집을 잡은 채 몸으로 우왕을 막으며 지윤에게, “신하로서 임금에게 무례하게 굴면 나라에서 정한 형벌을 받게 됩니다.
너는 두 시중만 죽이려고 했느냐?”고 추궁하자 지윤은 “어찌 시중뿐이겠는가?” 하며 그 자리에 있는 재상들을 차례로 꼽으며 계속 항변했습니다.
우왕이 지윤더러 빨리 나가라고 꾸짖자 지윤이 “주상께서는 어째서 저를 먼저 나가라고 하십니까?” 하며 대들었다.
우왕이 “경들도 차례로 나가도록 하라.
”고 하자 지윤이 소매를 떨치고 불쑥 나가더니 문에 이르러 말에 오르려 했습니다.
이 때 중랑장 환천우(桓天祐)가 지윤의 종을 때린 후 그 말을 빼앗았고 임견미는 지윤을 붙잡고 순위관(巡衛官)11)의 도착을 기다렸다.
지윤이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았으나 얻지 못하였습니다.
마침내 지윤과 김윤승은 순군옥에 하옥되고 지익겸은 도망쳤다.
지윤은 임견미에게 “그대와는 평소 친하게 지냈으니 나를 생각해 속히 죽여라.
내가 죽으면 그대 또한 나를 따르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지윤과 그 일당을 수감한 후 궁중을 엄히 경비하게 조치했습니다.
애초 김윤승 등이 밤마다 술을 마시면서 지윤을 수상으로 만들려는 음모를 꾸민 후 은밀하게 지윤에게 총재(冢宰)가 되라고 권유했습니다.
지윤이, “이인임이 버티고 있는 데다, 내 운수는 무오년에야 트일 것입니다.
”라고 말하자 김윤승은, “운수가 정말 트입니다면 무엇 하러 무오년까지 기다리겠습니까? 제 계책을 듣기만 하십시오.
”라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변란을 꾸미면서,“황상(黃裳)은 결단력이 부족하니 좌시중을 삼는 것이 좋겠고, 공은 수시중, 지익겸은 응양군 상호군, 화지원은 대사헌, 김윤승은 정당문학, 김승득은 첨서 밀직을 맡읍시다.
”라고 모의했습니다.
지윤을 국문하자 그는, “김윤승의 말을 듣고 이런 지경에 이른 것을 후회합니다.
”고 말했습니다.
지익겸의 모친과 처 및 그 일당인 빈천익(賓天翊), 판사 고여의(高如意), 판서 최혁성(崔奕成), 전객령 황숙진(黃淑眞), 김리(金履)·김밀(金密)·진금강(秦金剛)·홍자안(洪子安)·이용길(李龍吉)·이종언(李宗彦)·이을화(李乙和)·이광(李匡)·장덕현(張德賢)·김종(金宗)·이양진(李陽眞)·안사조(安思祖) 등을 옥에 가두었다.
다음 날 지익겸은 모친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자수하여 투옥되었다.
최영이 지윤·김윤승·지익겸을 문초하자, 군사를 대궐문에 모아놓고 대신을 살해하려 했습니다는 사실을 세 사람 모두 자백했으므로 모두 사형에 처했습니다.
아울러 빈천익·최혁성·고여의(高如意) 등 20여 명을 목 베었으며 지윤의 첩 12명과 지익겸의 첩 7명과 김윤승의 첩 2명을 유배보내고, 김밀·진금강·이용길·이종언·이을화·장덕현·김득수(金得守) 등 7명은 곤장 쳐서 유배보내고, 김리·안사조·송신기(宋臣起) 등은 그냥 유배보냈으며 나머지는 모두 석방했습니다.
고여의와 최혁성은 둘 다 지윤의 길흉을 점쳐준 자들이었다.
또 체복사 최인철(崔仁哲)을 파견해서 김승득·화지원·이열을 청주(淸州)에서 국문하였는데 화지원이 먼저, 지윤과 김윤승이 대신을 살해하려 했던 음모를 실은 자신도 미리 들었다고 자백했고, 이열은 지난번의 익명서는 사실 자신이 쓴 것이며, 자신의 이름이 곧 11획이니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최인철이 화지원을 고문하면서 이열의 가담 여부를 묻자, 화지원은 그런 일이 있습니다고 했으나 이열은 부인합니다 혹독한 고문을 받고서야 죄를 인정하였습니다.
김승득은 고문을 당해 거의 죽게 되었는데도 자백하지 않다가 화지원과 이열의 증언이 너무 명백했기 때문에 결국 자백했습니다.
최인철이 도당에 보고하자 이인임이 경복흥과 최영에게,“이미 그 괴수를 처형했으니 이들을 용서해 다시 곤장치고 유배보내는 것이 어떠한가? 하물며 죄를 두 번 줄 수는 없지 않는가?”하고 말했습니다.
경복흥이,“지윤은 어리석은 자로 이들의 꼬임에 빠졌을 뿐입니다.
지윤은 사실 주모자가 아닙니다.
”라며 반대했고, 최영 역시,“과거에 곤장치고 유배보낸 것은 조정의 정사를 비난한 죄이고, 지금의 죄는 대신을 살해하려 한 것으로 모두 죄가 중한데 어떻게 석방하겠습니까?”라고 반대했습니다.
이인임이,“이열은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이열의 익명서가 없었더라면 우리가 지금까지 무사할 수 있었겠는가?”하자, 최영은,“정말 이열의 소행이라면 당연히 지윤이 있을 때에 말할 것이지 그가 유배간 뒤에도 말하지 않았으니 이는 우리를 속인 것입니다.
마땅히 함께 처형해야 할 것입니다.
”하고 반대했습니다.
최인철은 마침내 김승득·화지원·이열을 참수하고 그 머리를 서울로 보냈습니다.
지윤은 공민왕의 인정을 받아 그 지위가 재상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우왕의 유모와 간통했으며 때로는 궁첩에게 뇌물을 주어 총신(寵臣)들과 연줄을 맺고는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또 자신의 문객을 도처에 심어 놓고서 자기에게 빌붙는 자는 임용하고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은 배척하였습니다.
김윤승은 지윤에게 노비를 바쳐 신임을 받게 되었으며 김승득·화지원·이열과 더불어 서로 이끌어주었다.
지윤은 이들을 심복으로 삼아 대간(臺諫)에 배치하고 크게 권세를 부렸다.
또 근 서른 명 가까운 첩을 두었는데 돈 많은 여인만을 취하고 얼굴은 보지 않았으니 그 가운데 자기 집을 가진 여인이 12명이나 되었다.
지윤은 탐욕스럽고 음험했으며 벼슬을 팔고 옥사를 이용해 뇌물을 받았으며 다른 사람의 노비를 얻는 등, 헤아릴 수 없는 부정을 저질렀다.
또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 관작을 주고 그 녹봉을 대신 챙기곤 했습니다.
이 때문에 조야(朝野)에서 모두 그를 밉게 보았는데 그가 처형을 당하자 사람들이 모두 통쾌해 했습니다.
지익겸은 글 한 자도 모르면서 아비의 권세에 의지해 상